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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시스템의 개혁 방안 "사교육, 부동산, 수도권 집중화, 저출산 해결을 위하여"
- 작성일
- 2025.04.17
- 수정일
- 2025.04.17
- 작성자
- 김선경
- 조회수
- 57
고등교육, 개인의 성장 너머 사회 구조의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고등교육은 단지 개인의 사회적 성장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입시 경쟁의 최종 전장이고, 계층 상승의 관문이며, 사교육 산업의 기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구조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치열한 대학 입시는 사교육과 부동산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 구조에 지친 젊은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되었다. 현재 대학 서열 구조는 공고하며, 사교육비는 가계 부담의 핵심 항목이 되었고,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지방 대학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인구 감소는 교육계에서는 학령인구 감소이지만, 국가에 있어 존망이 걸린 문제이다.
우리는 고등교육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기존의 대표적인 제안 중 하나가 바로 "서울대 10개 만들기"이다. 서울대를 포함한 거점국립대 10개를 서울대 수준으로 만들자는 안이다. 이를 통해 명문대 진학에 집중된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사교육 시장을 억제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수도권 집중화를 막아 국토의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목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을 실효성 있게 만들기 위해, 각 지역의 거점국립대에 오랜 기간 정교하고 꾸준하게 많은 물질적·인적 지원을 해야 한다. 지역의 고등학교 서열화 및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될 수 있고, 실패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와 병행하여 다른 대안도 필요하다.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고등교육 시장 개방: 해외 대학 유치의 전략적 가치
시선을 좁은 한반도가 아닌 세계로 두자. 대한민국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서울대 10개를 만드는 것보다, 이미 검증된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해외 우수 대학을 국내에 유치하는 것이다. 바로 고등교육 시장의 개방이다.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 빠르게 세계적 수준의 다양한 대학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
싱가포르는 이미 자국 내 교육 문제보다 더 큰 전략적 목표인 ‘국가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고등교육 시장을 개방했다. Yale-NUS College, SUTD(MIT 협력대학) 등은 단순한 외국 대학 유치가 아니라 해외 선진 대학과 협업하여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를 혁신했다.
해외 명문 대학과의 협력, 외국 대학 분교 유치, 국제 공동학위 확대 등 이미 검증된 정책을 통해 검증된 해외 대학 시스템을 한국 사회에 이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 대학의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고, 기존 대학 서열 및 입시 과열 타파가 가능하다. 이 전략은 단지 외국 대학을 들여오는 차원이 아니다. 전체 고등교육 시스템의 선택권과 유연성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교육 문제는 대학 진학 경로가 좁고 획일화된 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입시의 유일한 정점으로 SKY 대학만이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선택지가 제도적으로 열려 있다면 학생과 학부모가 느끼는 입시 부담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 시장의 개방을 통한 고등교육 시스템의 개혁은 바로 이러한 선택지를 넓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고등교육 시스템이 개혁되어 더 많은 학생에게 지금보다 수준 높은 고등교육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불필요한 대학 입시 경쟁과 사교육도 줄어들 것이고, 사교육 성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과도한 주택 지출도 감소할 것이며, 수도권 집중화 현상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입시, 사교육, 부동산에 집중된 사회의 에너지를 더욱 중요한 본질에 투입하여 더 나은 사회로 변모할 수 있다.
국제화의 그림자, 한국어 학문 생태계 위기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있다. 고등교육 시장 개방이 확대될수록 영어로 강의하는 트랙과 학교가 증가할 것이다. 이는 국제 학생 유치와 세계 대학과의 연계를 위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자국인에게는 오롯이 좋을까? 인간의 사고 활동은 주로 언어를 매개체로 진행된다. 고도의 사고 활동을 위해서 모국어를 통한 고등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철학, 문학, 역사, 법학처럼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와 논리적 깊이가 핵심인 학문은 모국어로 배울 때 훨씬 더 깊이 있는 이해와 비판적 사고가 가능하다. 이공학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초기 근대화 시기부터 서양의 학문을 정교하게 번역하여 모두 자국어화했고, 이 전통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이 자국어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과학을 이끌고 있다. 영어는 세계를 여는 열쇠이지만, 모국어 학문 생태계에 있어 자물쇠가 될 수 있다.
유럽 또한 이 같은 딜레마를 경험한 바 있다. 그 결과, 프랑스는 '투봉법(Toubon Law)'을 통해 자국어 사용을 공공 교육기관에서 원칙화했으며, 독일은 이중언어 운영 모델을 제도화해 영어와 독일어 트랙을 함께 유지하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는 영어화가 지나치게 진행되면서 네덜란드어 학문 생태계가 위축된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중언어 전략, 한국형 고등교육 모델 제안
한국의 고등교육 시장이 개방된다면, 영어 기반 교육을 통한 전략적 국제화와 한국어 학문 생태계 육성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한국어 학문 생태계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축적해 온 지식의 역사와 담론의 축이다. 이는 한국적 사고와 표현이 축적되고 전달되는 공간이며, 후속 세대에게 고유한 학문적 자산을 계승하는 핵심 기반이다. 이 생태계가 위축된다면 단지 교육 언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학문 전체의 정체성과 자립성이 위협받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한국어 교육과 영어 교육을 학제 및 학위에 따라 전략적으로 조정하는 "한국형 이중축 고등교육 전략"을 제안하는 바이다. 예를 들어, 주로 이미 정립된 지식을 습득하는 학부 중심 교육은 한국어와 영어 비중을 고루 설정하되,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이공학 대학원의 경우 영어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매우 폄하되어 있는 국문 교과서 및 논문 출판 활동에 있어 재정적·제도적 인센티브를 주어 한국어 학문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교육 개혁 난해함을 넘어서는 비전과 실천 로드맵
교육은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이자 매우 첨예한 갈등이 내재한 주제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교육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지만, 고등교육 개혁은 매우 부진한 상황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고등교육 시장 개방 수준은 매우 제한적인 구조다. 외국 대학의 국내 분교 설립이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육부의 엄격한 인가 기준, 학위 인정 문제, 캠퍼스 부지 확보 요건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 절차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한국 내에서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고등교육 정책 문화, 즉 교육을 '관리 대상'으로 보는 관료주의적 접근 역시 유연한 개방을 가로막고 있다.
둘째, 외국 대학 유치가 국내 대학을 약화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해외 명문 대학과의 협력, 외국 대학 분교 유치, 국제 공동학위 확대는 외국 대학과 국내 대학 간 상생과 혁신 모델로 충분히 가능하다.
셋째, 고등교육 개혁에 대한 사회적 대안 부재와 공론화 부족이다. 고등교육 개혁은 단기적으로 성과를 창출하기 힘들고, 교육에 있어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다. 손을 대기에는 너무도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그러므로, 정부 차원에서 고등교육 개혁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로드맵을 갖출 필요가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집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큰 방향이 정해졌다면, 사회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오로지 대한민국 교육 개혁을 추구하는 이들로 구성된 싱크탱크를 만들어 전략적이고 세밀한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 현재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을 혁신하여 세계 최고의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머리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교육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머리로 먹고사는 나라, 교육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
마지막으로 고등교육 개혁과 관련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은 GDP 대비 고등교육 공공투자 비율이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며, 경쟁국 대비로도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등록금 동결까지 더해져 대학 운영의 재정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열악한 재정과 대학 운영 자율성 부족으로 인해 우수 교원의 확보와 연구 인프라 확충도 어려운 상황이다. 고등교육이 국가의 미래를 여는 핵심 동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처럼 낮은 고등교육 투자는 사실상 국가적 자해나 다름없다.
교육부의 과도한 규제와 행정 개입은 대학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학사 운영, 교수 임용, 예산 집행 등 대학 고유의 자율 영역에까지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면서, 각 대학은 자신의 교육 철학과 특성에 따라 독립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반면 선진국들은 대학을 '관리 대상'이 아니라 '책임 있는 자율 기관'으로 보며, 자율과 책무성의 균형을 중시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선진국은 대학 운영에 있어 정부의 직접 간섭을 최소화하고, 재정 지원과 평가는 원칙 중심으로 설계된다. 한국도 방향 전환이 시급하다.
고등교육 개혁을 통한 국가 전반의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 문제로 인해 파생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등교육의 전략적 개방과 대학의 자율성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은 지금까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며, 마침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제대로 된 부존 자원 없이 사람, 즉 머리로 먹고 살아온 대한민국이다. 우리에게 고등교육 개혁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고등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단순한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도달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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