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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자연을 모방한 생물전기의 예술
- 작성일
- 2025.05.19
- 수정일
- 2025.05.19
- 작성자
- 김선경
- 조회수
- 9
정석희 교수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 스탠퍼드대 선정 세계 상위 2% 과학자)
우리는 지금, 산업혁명 이후 구축된 문명의 틀을 다시 설계해야 할 전환점에 서 있다. 기후위기, 자원 고갈, 생물다양성의 붕괴는 단지 환경문제를 넘어, 기존 산업과 기술 체계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 소장이 제안한 청색기술은 단순한 친환경 기술을 넘어선 개념이다. 자연 생태계의 원리를 기술 기획 단계에서부터 모방하고, 비용 효율성과 자원 순환성, 사회적 포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총체적 기술 전략이다. 이는 기술적 수정을 넘어 문명의 작동원리를 재편하는 시도다.
청색기술은 말 그대로 ‘자연에서 배우는 기술’이다. 생물모방(biomimicry)과 생물영감(bio-inspiration)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며, 자연이 36억 년에 걸쳐 축적해온 에너지 효율과 생태적 균형의 지혜를 담고 있다. 산업기술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청색기술은 자연과의 협력과 공진화를 추구한다. 바퀴벌레의 더듬이를 본뜬 센서, 거미줄 구조를 모방한 고강도 섬유, 산호의 석회화 메커니즘을 활용한 탄소 포집 기술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청색기술이 대한민국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철학’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기술 개발과 산업화로 이어져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그것이 바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Microbial Electrochemical System, MES) 이다.
MES는 체외로 전자를 방출하는 체외전자방출균(Exoelectrogens) 또는 외부에서 전자를 흡수하는 체외전자영양균(Exoelectrotrophs) 이 전극과 상호작용하며, 오염물질을 분해하고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며 전기 및 유용물질을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MES는 하폐수처리장을 에너지 공장으로 전환하고, 온실가스를 자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청색경제’ 실현의 초석이다.
이 시스템의 본질은 생체 내 에너지 흐름을 재현하는 데 있다. 자연계의 Geobacter나 Shewanella 같은 미생물은 유기물을 분해하며 금속산화물에 전자를 전달하는 특성이 있다. 이를 인공적으로 구현한 것이 미생물 연료전지(Microbial Fuel Cell, MFC) 와 미생물 전해전지(Microbial Electrolysis Cell, MEC) 다. 전극이 자연의 금속 역할을, 하폐수가 미생물의 에너지원이 되어 실제 전기를 생성한다.
반대로 Sporomusa나 Clostridium 같은 전자영양균은 외부 전자를 받아 이산화탄소를 유기화합물로 환원시킨다. 이를 구현한 미생물 전기합성전지(Microbial Electrosynthesis Cell, MESC) 는 빛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기적 광합성’ 기술이다.
MES는 단순한 미생물학 기술이 아니다. 생물의 세포막 내 전자전달 체계, 에너지 순환, 구조적 효율성까지 총체적으로 모방한 청색기술의 집약체다. 미생물이 전극 표면에 형성하는 바이오필름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작동하며, 내부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흐른다. 이를 정밀하게 구현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미생물의 나노전선(nanowire)이나 필리(pili)를 모방한 나노소재, 그래핀, 생체 촉매 기반 전극을 개발하고 있다.
각 기술은 특정 기능으로 발전하고 있다. MFC는 유기물의 혐기성 분해와 산화 과정을 결합해 전기를 생산하고, MEC는 외부 전기를 가해 수소를 생성하며, MESC는 이산화탄소를 고부가가치 화합물로 전환한다. 이 모두는 ‘자연에서 배우고, 생물처럼 작동하며, 생물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에너지를 다루는’ 청색기술의 전형이다.
MFC는 하폐수를 처리하며 동시에 전기를 생산함으로써, ‘에너지 소비형’ 하폐수처리장을 ‘에너지 생산형’으로 바꾼다. 한국의 하폐수에는 원자로 6기 분량의 에너지가 내재돼 있으나, 그 처리를 위해 오히려 원자로 1기 수준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MFC를 활용하면 이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으며, 발생하는 슬러지도 대폭 줄일 수 있다.
나아가 MFC는 도심형 분산처리, 농촌 오염원 저감, 하천 정화 등에 적용 가능하며, 청색기술이 지향하는 ‘도시와 생태의 공존’이라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 하수도 건설 비용을 줄이고 싱크홀 방지 등 기반시설의 근본적 개혁도 가능하다.
MEC는 산소 공급을 차단하고 외부 회로에 소량의 전기를 인가해 청정 수소나 메탄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하폐수를 정화하며 동시에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이 시스템은, 수소 경제 전환의 열쇠가 될 수 있다. MES는 탄소중립 시대, 자립형 도시의 핵심 기술이자 생태적 에너지 순환 구조의 중심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분야에 대한 대한민국의 투자는 매우 제한적이다. 미국, 독일, 네덜란드, 중국 등은 이미 수천억 원 규모의 정부지원을 바탕으로 실증시설과 기술기반 창업을 촉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부분 대학 연구실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실증단계에서의 정부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 이 격차는 기술력뿐 아니라, 미래 산업의 경쟁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초기 실증화 시도의 실패에서 비롯된 지나친 보수성이다. 하지만 진정한 연구란 실패를 포함한 과정이며,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일수록 실패의 가능성은 필연적이다. 한국은 이러한 실패에 유난히 인색하며, 결과적으로 연구비도 급감하고, 인재 유입도 위축되고 있다. 심지어 확보된 예산조차 유능한 연구자에게 배분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적 제안을 제시한다.
1. MES의 국가 전략기술 지정MES는 기후·환경 대응형 청색기술의 핵심으로, 범부처 차원의 전략적 육성이 필요하다. 단순한 연구비 증액을 넘어, 실증화, 창업, 사업화까지 포괄하는 종합 계획이 요구된다.
2. 청색기술 기반 공공연구소 설립AI나 반도체처럼, 청색기술—특히 MES, 바이오센서, 자가회복 소재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략 거점이 필요하다. 이 연구소는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 사회혁신을 지향하고, 대학·지역사회와 연계된 실증 및 교육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
3. 지자체 및 교육기관 중심의 실증 플랫폼 구축지역 하수처리장, 농업폐수, 도시 재생구역 등에 MFC 기반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대학·기업·시민이 함께 운영하는 공공-민간-학계 연합 모델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는 청년 연구자 양성, 기술 창업, 과학문화 확산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생태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대응 1.5℃ 포럼의 최용국 회장(전남대학교 명예교수)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한국은 이제 청색기술의 철학을 넘어 실행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미생물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강인하고 지능적인 생명체의 원리를 통해, 우리 사회도 조용한 혁명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와 환경, 산업과 공동체가 함께 호흡하는 미래를 향해, 지금이야말로 청색기술과 미생물 전기화학기술의 시대를 여는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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